1. 이인성과 이경순

이경순 화백은 1946년 이화여고를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 제2회 46학번으로 입학하여 1950년 졸업한다. 이경순 화백은 평생 후학양성에 힘쓰면서도 국전 16회 입선, 4회 특선, 여성국전초대작가를 역임한다. 현재 이경순 화백은 목우회 고문이고 미협, 녹미회 회원이다. 노화가의 성실함과 진지함, 미술에 대한 열정에 대해서는 이미 이구동성으로 존경의 말을 모으고 있다. 전시장에서 두어 번 뵌 적이 있는 마당에 졸필로 선생님과 만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글을 쓰고자 하니 아무래도 이모저모를 주의 깊게 보게 되고 살피게 되는데, 이경순 화백의 약력을 보다 이화여고와 이화여대 입학한 년도를 보니 갑자기 다급한 질문이 떠오른 것이다. 혹시 이인성(1912-1950) 선생에게 배우지 않았나 하는 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경순 화백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모두 이인성 선생에게 수업을 받았다. 이인성과 이경순은 사제지간인 것이다. 불의의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신 이인성의 졸년(卒年)이 이경순이 대학을 졸업한 해이니, 이인성이 서울 생활 내내 만난 인물 중 한명이 이경순이다. 이인성 선생께 배운 제자를 만나는 것도 감동인데, 그분 전시에 대한 졸문(拙文)을 쓰게 되다니 더욱 감동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채화가 제일 기억에 남으셨는지, 이경순 화백은 수채화를 아주 잘 그리는 분으로 이인성 선생을 기억한다. 이인성 선생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말을 여러 번 하셨고, 종종 그림 잘 그리는 선생님으로 이인성을 추억했다고 한다. 이에 이인성의 ‘장미’와 이경순의 ‘장미’를, 이인성의 인물화와 이경순의 인물화를 같이 감상하는 것으로서 이 만남의 일말을 기념하고자 한다.

2. 꽃과 인물

우리에게 정물화는 이종우(1899-1981)가 살롱 도톤트에서 입선한 <인형이 있는 정물>이 최초가 아닌가 한다. 기명절지화(器皿折枝畵)라는, 정물화와 비슷한 장르가 우리에게도 있었지만 기명절지화는 정물화처럼 사물을 주제로 삼는 것이 아니고, 길상과 부귀 장식의 기능이 강하다. 초충도(草蟲圖)도 비슷하기는 하나 풍경의 요소가 강하다. 정물화처럼 사물 자체가 화제(畵題)로 된 것은 전통과는 다른 신문물의 산물이다. 김종태(1906-1935)는 이종우 개인전에 참관하며 파리에서 유학한 자로서 그 실력을 칭송하면서도, 금번 출품한 이종우의 정물이 대상의 질감이 뚜렷하지 않아 아쉽다는 평을 남긴다. 당시는 서양화 도입의 초창기 임에도 정물화 잘 그리는 법을 신문에 소개하며 사물에 대한 관찰의 충실성과 사물 본래의 성질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사과의 껍질은 단단하여도 그 속의 과육이 부드럽기 때문에, 사과를 그린 정물화는 속살인 과육의 부드러움도 드러내야만 잘 그린 것이라는 지침이 실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46학번 이경순 작풍(作風)은 완전히 신식(新式)이다. 대상의 적실성(適實性)에만 머물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정물에 대한 예의와 정성을 화면 가득 담아내고 그에 대한 칭송으로 넘쳐난다. 새로운 기법의 작곡처럼 화면 전체를 ‘기쁜’ 미적 대상으로 물들이고, 고상한 정신의 즐거움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꽃, 화병, 테이블보, 벽지, 주변 기물 등등의 배치와 상호 얽힘을 보면 ‘관계를 통해 사물을 바라보는’ 이화백의 독창성이 뚜렷하다. 합창처럼 화면 전체를 문제 삼고 사물에 대한 찬가(讚歌)로 가득 채운다는 점이 이경순이 정물을 대하는 태도의 색다른 점이다. 이런 솜씨 면에서 과연 이인성의 제자구나 싶고, 그에 더해 여성 고유의 활달함과 섬세함이 동시에 새겨있다. 최근 이경순은 2021년 세계수채화비엔날레에 출품함으로써 수채화의 기린아였던 이인성 제자로서의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이화백의 정물, 특히 꽃 그림은 꽃병의 선택에 신중하고, 꽃다발의 풍성함과 색의 균형, 기울기 방향 그리고 화병이 놓인 테이블과 배경의 문양 모두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대상 자체에 대한 충실성에만 한정되지 않고 ‘주변과의 관계를 함께 살피는’ 관점인데 이를 시각적으로 이끌어 내는 방식이 ‘장식의 충만함’이 아닐까 한다. 향기를 대신하듯 화면 전체에 율동이 퍼져 시각 본연의 즐거움을 끌어내고 있다. 특히, 눈에 띠는 특징은 꽃병 자체의 진귀함, 꽃병의 무늬, 테이블의 무늬 혹은 주변 기물들의 무늬가 서로 반향하여 화려한 기분을 강화하고 있는 점인데, 이 점이 바로 화면 전체를 시각적인 고유 공간으로 다루는 태도인데, 화면을 ‘기쁨과 고상한 정신에 물들게 하는’ 것이고, ‘관계를 통해 사물을 바라보는’ 이화백의 고유한 관점이라 파악된다. 이경순의 정물화는 전체적으로 장식적이고 화려함에도 화려함에 눌리지 않고 명증하다. 이렇게 장식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주제를 강조하는 화면운영은 매우 현대적이며 선구적인 사례가 아닌가 한다. 이경순의 작품 특성을 조금 더 알기 위해 이인성의 ‘장미’와 이경순의 ‘장미’를 같이 감상해보자.

이인성과 이경순의 장미가 있다. 구도가 다르고, 제작된 년도도 차이가 있어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꽃을 그리는 두 사람의 태도는 한눈에 확연히 드러난다. 이경순은 상당히 공들여 꽃을 묘사한다. 한 송이 한 송이를 세밀하게 그리고, 동원되는 기물의 배치와 표현을 통해 화면 전체 균형이나 동세, 활기를 이끌어 내는데 고미술, 테이블보나 배경의 문양, 항아리의 문양 등이 그 역할을 하며 비중있게 다루어진다. 이인성의 정물은 정밀한 묘사라기보다 활짝 핀 장미와 봉우리가 어우러져 장미의 생명감에 집중하도록 배경을 추상화함으로써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연출한다(이인성의 흰장미, 붉은 장미인용 이미지). 이인성의 경우는 색채와 구도 속에서 꽃에 집중하게 하는데 반해 이경순이 꽃을 칭송하는 방식은 명증한 묘사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인성의 다른 정물화를 보더라도 유화나 수채화 모두에서 대상에 주목하도록 화면을 구성하고 배경을 간소화한다. 반면 이경순은 꽃송이 이외 기물과 배경을 장식으로 강조한다. 도자기 등 꽃병을 공들여 선택하고, 꽃병이 놓일 테이블도 정성을 들인다. 모든 것이 꽃을 예찬하는 배치이면서 동등하게 다루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이경순 정물은 사물을 예찬하는 한 인간의 인문정신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 최근 이경순의 정물화는 꽃병과 꽃이 단순화되면서 정물에 풍경을 결합하고 있다. 꽃을 둘러싼 장식은 전통 문창살로 대체되고 기학학적인 문양과 함께 등장하는 창호 문의 표면 질감이나 면의 질감은 이경순의 고유한 표현기법이 아닐까한다. 이제 실외의 풍경이 배경을 대신하고 있다.

정물화와는 달리 인물화의 경우 이경순의 작풍(作風)은 정반대의 특징이 드러난다. 이인성의 경우는 인상주의의 강한 영향으로 빠른 붓 터치에 색채와 빛의 양으로 인물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지만(이인성, <노란 원피스를 입은 여인>, <빨간 옷을 입은 소녀> 등), 이경순의 경우 인물화에 있어서는 장식성은 배제된다. 표현 기법에 있어서 견고함이 우선하며, 공간이 매우 명료하게 구성된다. 특히 1963년 제12회 국전 특선작 <소녀상>(유화, 1963)은 의자에 앉은 인물 그림으로 전형적인 아카데미즘 화풍이다. 이 작품에서 보이는 빛의 흐름에서 인상주의의 영향도 읽어볼 수 있지만 짧은 터치로 채원 간 인물의 묵직한 양감은 세잔과의 상관성을 더 생각하게 하면서도 표현적이어서 정물화에서와 같이 시각적인 호소력이 짙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1920년대, 1930년대 정물화나 인물화 평을 살펴보면 대개 ‘진실됨이나 충실성’을 비평의 근거로 삼고 있다. 이 두 가지 덕목은 응물상형(應物象形)과 골법용필(骨法用筆)을 합친 것과 비슷한데, 사물에 대해 얼마나 성실하게 관찰했는지, 얼마나 성의있게 연구하였는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이다. 이경순의 작품은 사물에 대한 성실한 관찰과 이해를 바탕으로 하되, 그것을 드러내는 방식에 있어 고유한 현대적인 특징이 있다. 화면을 가득 메우는 리듬과 장식의 강화를 통해 주제의 의미를 강조하는 방식이다. 화면의 리듬과 장식은 대상과 상호 교감한 작가의 기분에서 구성되는데, 이 기분은 미적 대상에 대한 감사와 칭송으로서 양명(陽明)과 쾌활의 시각 언어로 드러낸 것이다. 한편 이경순의 인물화 전시는 한국전쟁 이후 우리의 아카데미즘과 국전풍(國展風)의 작업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이경순이 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이인성에게 배웠다는 점은 남다른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이화백에 따르면 이화여고 재학 중에 이인성으로부터 그림을 잘 그린다고 칭찬을 들었고, 이것이 미대로 진학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이 기회에 이인성과 이경순이 사제의 인연이 있었다는 점을 깊이 환기하며 두 화백의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매우 뜻 깊다. 나아가 이인성을 추억하는 제자를 통해 요절한 이인성과 연결해보면서 근대화풍이 현대로 이어지는 맥을 짚어보고, ‘이경순’이라는 전후 1세대 여류화가를 통해 화보에서만 보던 국전풍과 아카데미즘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더욱 뜻 깊다. 이를 통해 이경순 작업의 특징 또한 더 잘 살필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다. 덧붙이고 싶은 점은 1995년 이후 전개되고 있는 이경순의 작업이다. 이 시기부터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면서 이경순의 정물화는 평면화되고 수직수평의 기하학 패턴이 등장하며, 원경(遠景)의 드넓은 풍경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병에 꽂힌 꽃을 자연으로 돌려주는 듯도 하고, 자연을 실내로 들여오는 듯도 한 이러한 대범한 시도는 ‘방에서 광장’으로 그 상상을 확장해가듯, 장식의 규모를 원경의 자연으로 까지 확장한 것이 아닌지, 과감한 전환에 존경을 표한다.

3. 그리고 그녀들의 장식에 대해

조기주와 이경순은 모두 장식에 대한 남다른 추구심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보다 면밀하게 검토해 봐야겠지만, 이경순 역시 ‘장식성’에 대해 매우 호의적일 뿐만 아니라 ‘장식성’이 지닌 회화적 의미를 이해하고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여 전개한 ‘평면적인 정물∙풍경’에서 보이는 장식의 의미가 ‘회화 고유의 일’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닌지 추측해본다. 이 ‘장식’에 대한 추구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혹시 이 점이 여성성과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관계가 있다면 ‘화가들, 엄마들, 여자들’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인지는 과제로 남긴다.

2021.12. 13
남인숙(미술평론가/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