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 개인전
<물질과 정신성 : Substance and Spirituality> 서문
다양한 변모로 끊임없이 시도
화가 조기주는 작품전에 앞서 다음과 같은 글을 쓰고 있다.
“물질은 어떤 비법에 의해 다른 존재의 양태가 될 수 있다. 비법은 실험적인 것을 되풀이하면서 발견된다. 연금술에서 말해지는 그러한 신비주의비법의 정수는 신이 고통-죽음 그리고 부활로 상징되어지는 것처럼 그런 종교적 의식을 통해 부활된다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그 물질의 실체가 본질의 정신이 되는 것이다…..그런 변질(transmutation)의 과정을 통해 물질은 초월적 존재의 형태가 되고 구제(redemption)되어 영원 불멸성을 얻는다. 물질은 그 자유가 최고조에 달하여 빛을 얻고 무한 생명을 갖게 되어 물질적 차원에서 정신적 차원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그 과정에서 미적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화가 조기주는 1979년 이화여대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1982년 미국 Pratt Institute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하였다. 즉 조기주는 한국에서 잘 뿌리를 내리고 미국에 건너가 예술의 철학을 배웠던 것이다. 앞에서 인용한 그의 글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그린다는 행위를 뒷받침하고 있는 이론적 구조가 엿보인다. 그림이란 존재이전에 그가 지녀야할 당위성인 것이다.
조형실험가로서의 조기주다 여러가지 형상-색채-선 등을 거쳐가면서 오늘날 도전한 곳은 원의 세계이다. 물론 이같은 원의 집착은 1982년 미국문화원 전시실에서 가진바 있는 귀국전에서도 엿볼 수 있다. 화가 조기주와 원과의 관계가 어떤 경로로 이루어졌는지는 모르나 그가 미국에서의 수업 도중에 우주의 현상을 조형세계의 구조로서 받아들인 것이 원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후 화가 조기주는 원의 다양한 변모를 통해 끊임없는 시도를 되풀이한다. 1989년대 가진 바 있는 조기주 작품전에서도 그러한 원의 사상이 되풀이 되고 있다. 다만 초기에 보여주었던 원이 아닌 운동을 머금고 있는 원, 말하자면 이그러지고 움직이는 원으로 추진되었다.
1991년에 개최되는 조기주전에도 그의 예술의 바탕이 되고 있는 신앙적 요소는 그대로 지니고 있으나 원의 해체과정이라든가 동판을 사용해 원을 부각시켰다는 점 등 다소의 변모가 엿보있다. 그리하여 그의 예술 속에 숨쉬고 있는 과학과 철학, 예술과의 관계를 한층 뚜렷하게 하는 것이 이번 전시라고 할 수 있다.
한 예술가의 변모는 곧 그 예술가의 성장과정이다. 따라서 살아서 숨쉬는 동안 무엇인지 새로운 것을 찾아내고 새로운 것을 해야만 한다. 화가 조기주 역시 그렇게 살아나가는 한 사람의 화가인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장 이 경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