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주 The Stains of Life (삶의 흔적)展
2008. 12. 1 – 12. 13
갤러리 애맥
원에서 구멍으로 구멍에서 원으로
작품은 작가(개인)와 시대(역사)가 씨실과 날실이 되어 짜는 직물(textile)이다. 작품은 작가의 사적이고 내밀한 삶의 응축물이자 대체물이며 동시에 작가를 둘러싼 시대와 역사의 일반성의 결과물(찌꺼기?)이다. 전자가 지나치게 강화될 때 우리는 천재를 둘러싼 신화로 초대받을 것이고 후자가 지나칠 때 우리는 예술에서 정치를 읽게 될 것이다. 많은 경우 전자는 작가를 초역사적 “개인”으로, 후자는 작가를 역사의 대리인으로 “조작”할 것이 뻔하다. 예술의 위치는 그 둘 사이에서 진자처럼 움직인다. 개인과 역사 중 어느 한 항으로 작가를 설명하는 것은 물론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는 포스트모던한 인식(여성주의가 먼저 선취한)에 의해 약화되었다.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의 이분법이 근대적 인식틀을 정당화하는 조건이었으므로, 근대적 인식틀이 인간을 설명하는데 대단히 문제가 많은 폭력적 틀이었음을 인정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둘이 겹치는 지점, 중첩의 지점에 작가를 세우는 일이다. 경계에 서는 일, 경계로 내모는 일은 사실 불편한 일이다. 그러나 단순하고 명료한 것들이 삶을 설명하는데 전혀 소용이 없음을 깨달았다면 그 불편함과 고통을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와 정치의 옥죄임이나 영향력을 짐짓 무시하는데 익숙한 작가라면 이런 시도에 손사래를 칠지 모른다. 어쨌든 이번 비평문은 그런 시도에서 출발한다.
작가에게 건네받은 이십년 전쯤의 전시도록에서 이번 전시까지 줄곧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미지는 “원”이다. 작가는 어느 전시에선가 작가노트에 “우주, 순환, 알, 생명, 자궁” 등등의 언어적 유비를 원의 자장 안으로 끌어들이고 싶다고 적었다. 원은 회화적 형태로, 작가가 사용한 매체로서의 인공진주, 비주, 비디오 작업에 등장한 입, 눈, 귀와 같은 구멍으로 계속 반복된다. 작가가 원에 대한 보이는 집착(애착?)은 작업의 형식이 바뀌어 캔버스가 아닐 때에도 줄곧 등장한다.
자연과 우주와 삶에는 똑같은 것들이 없다. 개별성은 보편성과 일반성에 선행하는 구체성이다. 개념과 언어는 동일화하고 분류하고 환원한다. 따라서 언어는 차이를 삭제하고 삶을 억압한다. 지적, 정신적, 관념론적, 따라서 환원론적인 태도는 삶의 개별성과 구체성을 혐오하는 혹은 두려워하는 금욕주의적 태도이다. 아마도 우리는 이것을 모든 금욕주의의 기원으로서의 종교적 태도라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자신의 작업을 “우주와 생명체의 원리와 본질에 대한 탐구”로 정의한 작가에게서, 즉 원리와 본질에 대한 예의(집착?)를 중시하는 작가에게서 확인되는 태도이다. 이 지점에서 작가는 예의 모더니스트의 특성을 드러낸다.
반모더니즘의 시대에 모더니즘을 설명하는 틀은 대단히 다양하다. 그럼에도 추상을 지향한 모더니즘을 일갈하는 개념은 정신적인 것, 관념적인 것, 인식으로서의 예술의 지위일 것이다. 모더니즘은 삶이 아니라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것, 다름 아닌 언어로 지은 집의 주인들의 서사였다. 그런 점에서 모더니즘은 사유와 개념적 추상의 능력을 극대화한 인간으로서의 남성적 세계의 일환이었다. 위대한 모더니즘 작가가 모두 남성이라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다. 모더니즘의 지배력 안에서 여성 작가들은 도대체 어떤 위치를 붙들어야 했을까? 남성보다 더 남성적이어야 했을, 그럼에도 남성이 아닌 “명예 남성”이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던 여성 작가들의 분열과 고통을 우리가 감히 이해할 수 있을까?
작가이고자 했기에 여성(성)을 포기해야 했던 인간들이 합류한 영웅들의 영토 모더니즘. 조기주의 작업에서 일관적으로 드러나는 원의 형상은 관념적이고 규범적이며 따라서 남성적이다. 자연과 우주와 삶의 본질과 원리로서의 원에 유일하게 부재하는 것이 자연과 우주와 삶의 다양성과 개별성이다. 원리와 본질은 추상화 이후에 등장하는 것이니. 작가의 어머니가 이미 작가였고 그녀의 작업 이미지가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할당되었던 영역인 바 사적인 공간으로서의 실내와 꽃이라는 것은 새로움을 추구하는 작가에게 극복해야 할 전통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어머니의 여성성에서 벗어나려한 작가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남성적 태도에서 작가의 아버지는 작가에게 혐오스러운 가부장제적 폭군으로서의 남성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모더니즘의 남성적 세계관에 대한 모방적 동일시는 남성중심의 미술계에서 인정받아야 하는 소수자의 생존방식이었을 것이며 동시에 그것이 그다지 부정적이고 내키지 않은 선택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작가의 가족사를 통해 조심스럽게 추측해보는 것이다.
일찍이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경험한 작가에게 이십대에 경험한 국내의 모더니즘과 미국에서 마침 이울고 있던 모더니즘은 벗겨낼 수 없는 “주홍글씨” 같은 것이지 않았을까? 70년대 말 미국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교차로였을 것이고 그 와중에 작가를 엄습한 새로움의 양상은 이미 작가의 몸에 각인된 모더니즘을 공격하고 괴롭혔을지 모른다. 우리에게 70년대의 서구는 다원주의의 급류를 타던 공간이고 작가 역시 그곳에서 지금껏 억압되어 있던 자신 속 타자들의 존재권리를 정당화하고 싶은 욕망을 느꼈을지 모른다(이 부분은 온통 추측으로 밖에 말할 수 없다. 체험의 직접성은 쉽게 언어화할 수 없는 것이니)
그러나 라캉의 언급처럼 억압된 욕망과 타자는 언제든지 돌아오기 마련이고 기실 규범화된 질서의 체계 안에 그 가능성, 흔적은 어김없이 남아 있기 마련이다. 모더니즘의 지배력을 빼고 보면 작가의 화면에는 금욕주의적인 모더니즘으로 완전히 포섭될 수 없는 잉여, 욕망이 마치 탐정이 발견해야 하는 사건의 단서처럼 이미 작업 여기저기 “숨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금욕주의적 인간의 화면은 시각적인 질서와 체계가 지배한다. 쾌락주의적인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화면은 더러움과 냄새, 생생함의 끔찍함이 드러난다. 그것은 지성과 인식의 지배를 비웃고 조롱하는 삶의 진실이다. 개별성과 구체성의 세계, 이른바 생성으로서의 몸이 지배하는 세계가 작가의 캔버스와 영상 이미지와 컴퓨터 작업 속에 이미 깃들어 있다.
그것이 작가의 명민한 타협인지 무의식적인 분열의 증거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모더니즘의 틀 밖으로 벗어나려는(삐져나온) 의지와 욕망이 화면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초기에서부터 논리정연한 선과 원으로 이루어진 세계를 가로지르는 어지러운 곡선과 얼룩들은 있었고 분비물을 흘리는 신체의 원들(구멍들)에 대한 집착을 보여주는 영화적 작업들, 평면의 화면에서 튀어나와 자신의 물성을 드러내는 진주와 비즈로 이루어진 작업 등에서 무질서와 일탈에의 욕망이 드러난다. 이제 원은 견고한 형태를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분비물을 흘리면서 삶의 형태들을 입으면서 개별성과 구체성의 세계로 내려앉고 있는 것이다. 액체와 구체적 형태를 지향하는 원은 이제 원형이나 본질이 아닌 냄새와 불결함, 생생함을 육화할 것이다.
데리다를 위시한 후기구조주의자들은 중심의 자리를 차지한 가치들이 중심이기 위해서는 그 중심보다 먼저 항상 주변부의 사소한 것, 무의미한 것, 개별적인 것이 인식론적으로나 존재론적으로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냈다. 회화를 회화이게 만드는 것이 사실 회화에서 밀려난 것들이라면 작가가 회화의 공간 속으로 불러들인 작업실의 부스러기들(쓰레기들), 굳어버린 물감들, 우연히 화면에 남게 된 이물질들은 회화를 정의하는 전제조건들, 타자였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후기구조주의는 모더니즘의 시대에 밀려난 삶의 진실들, 불결하고 불안하고 사소한 것들을 사유하려는, 그런 점에서 삶을 재현하려는 시도이다.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시도. 개별성과 직접성, 무의미한 것들을 포착하기란 사실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은 개념과 언어가 갖는 일반화하고 추상화하려는 욕망에서 새나가는 비언어적인 것들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화면은 그리기의 최소화와 재현된(첨가된?) 이미지의 최소성으로 인해 감상의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작가의 작품 앞에서 여전히 요구되는 것은 사유의 태도이다. 원형과 본질이 아니라 그것들 때문에 사소해지고 버려지고 결국 잊혀지는 것들에 대한 사유, 일종의 타자와 소수자에 대한 윤리적 반성의 태도이다. 물론 타자를 사유하는 일은 머리와 뇌가 아니라 슬픔과 연민을 동반하기에 반드시 가슴을 경유하는 일이다. 굳이 이 화면을 여성주의적 화면, 여성주의적 인식을 드러내는 화면이라고 부른다면 어색해질까? 지배하고 영토화하려는 남성과 달리 패배자의 자리로 물러나야 하는 것들을 기억하려는 이의 몸짓을?
이십대를 모더니즘에 대한 실험과 헌신으로 보낸 작가가 쉽게 모더니즘을 벗어났다면 혐의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 예민한 시기에 엄습한(매혹이었건 강요였건나) 욕망은 일생 한 사람을 위로하면서 괴롭히는 반복강박이라고, 그 후의 삶이란 그 시절로부터 도피하거나 돌아가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할 권리가 70,80년대에 청춘을 지나온 우리에게는 있다. 그런 점에서 모더니즘으로 들어가기와 모더니즘에서 나오기를 병행하는 작가의 분열적 행동은 “진정성”을 갖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이즘”은 껌처럼 씹다가 버릴 수 있는 일종의 유행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슬픈 시대 아닌가? 시대착오적인 신념을 분열의 상태로 견지하는 것은 고통스럽지만 위대한 몸짓이라고 생각한다.
원형과 본질에 대한 탐구로서의 모더니즘의 틀의 경계에서 작가는 원에 대한 통념(서구남성의 것이건 동양적인 것이건)과 원에 대한 전복적인 사유를 동시에 전달한다. 이것이 이제 보수주의로 낙인찍힌 모더니즘과 다원주의적인 사유의 진원지로서의 여성주의적 독해 중 어느 하나로 명료하게 평가될 수 없는 모호성의 문제임은 분명하다. 살아 있는 구멍, 원은 냄새와 액체, 더러운 것들을 마구 흘려보낸다. 공포와 매혹의 상징으로서의 구멍을 남성(남성적 세계)은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원의 이미지로 형상화함으로써 구멍에서 성을 제거해 버렸다면, 치욕과 긍정과 고통으로서의 삶, 아니 여성 자체인 구멍에 여성은 다시 있는 그대로의 삶을 돌려보내야 한다.
추상적인 원의 형태(흰 캔버스)와 액체성을 육화한 더러움, 얼룩, 흔적이 만나는 장면에서 아직(?) 힘은 전자에 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사각의 화면을 동그란 원으로 변형시키는 변주 속에서 회화성이 보존되며 칠하기와 붙이기의 공존 속에서 입체성(깊이)이 획득된다. 원과 구멍은 둘이면서 하나이다. 원은 삶을 뛰어넘으려는 심미화에의 욕망을 구멍은 삶을 닮으려는 욕망을 상징한다면 이 두 엇갈리는 욕망 사이에서 화면은 기이하지만 정적이다. 그렇기에 조기주의 화면은 날것 그대로의 삶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려는 포스트모던한, 아니 여성주의적인 태도보다 사유와 반성을 경유한 예술적 인식의 산물이다. 원(화면의 이미지)에서 구멍을 거쳐 다시 원(화면 자체가 된)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두 원은 다른 내포를 갖는다. 전자가 어떤 것도 담을 수 없을 만큼 궁핍해진 원이라면 후자는 분열, 소문, 침묵, 소음, 외침을 모두 끌어안은 원(회화)이다. 그런데 이 원은 하얗다. 블랙홀이 희다. 기괴하다. 이 흰 자궁은 이제 무엇을 낳을까? 존재의 세계를 이탈하면서 존재의 세계에 남으면서 생성을 닮으면서 생성하는….
2008년 미학박사 양효실